여행은 고등학교 1학년부터 계획했다. 그 당시 환율은 800원 = 100엔 수준이라 가격도 싼편이였고, 여행에 대한 막연한 동경 따위도 품고 있던터라, 중학교 3학년 때 했던 일본어 수행평가 - 일본 자유여행에 대한 계획표 짜오기 - 와 더불어 가보고 싶었나보다. 수능이 끝나고 맞은 20살은 자신감보단 걱정으로 가득하여 여행은 뒷전으로 미뤄뒀다. 그리고 지난 10월. 1학년 2학기 중간고사 동안 살펴둔 정보를 바탕으로 친구와 일본 여행을 본격적으로 계획해 나가기 시작했다.

부모님에게 돈을 가져다 쓰고싶지 않았고, 고등학생 때 부터 모아뒀던 자금으로만 가고 싶었다. 그러나 환율은 내가 생각하던 고1때 환율이 이미 아닌지 오래였다. 빈티지 여행의 시작은 항공권부터. 제주항공 얼리버드로 세금 포함 19만 6천원. 인천-오사카 왕복을 예매하고, 엔화는 5만6천엔을 가지고, 지난 1월 25일 새벽 5시. 새벽에 인천공항으로 떠났다.


고등학교때 내내 친했던 친구

중학교때 내내 친했던 친구

이거슨 나

동행하는 친구는 2명이였다. 한 명은 고등학교때 내내 친했던 친구고. 한명은 중학교 때 내내 친했던 친구였다.
인천공항 35번 게이트 앞에 여자들이 셀카를 찍길래 나도 허세 한번 부려봤다.


 

닭장같이 비좁던 저가 항공사의 비행기가 어찌 그리 재밌던지




도착했던 일본의 간사이 공항에서 말하는 한국어 안내가 정말 어색하게 들렸다. 발음이 우리나라 기계음만도 못하던데. 첫날 가기로 했던 고베시는 간사이 공항에서 한참 멀었다. 전철이 많아서 좋긴한데 회사마다 환승은 안된단다. 돈을 다 따로내야한다더라. 관광객을 위한 스룻토 간사이 패스를 끊어야만 했다. JR라인을 제외한 모든 간사이 지방의 모든 전철을 3800엔에 이틀 이용 가능했다.



간사이국제공항 ---(난카이공항선)--- 난카이우메다역-
한큐우메다역 ---(한큐고베라인)---고베산노미야역

사진은 한큐우메다역. 9개라인(맞나?)이 한번에 출발하고 도착하는 곳이였다.












도착한 고베의 날씨는 맑지 못했다. 비가 내리고 난 뒤 짙은회색이 되버린 거리와 싸늘함조차 우리나라와 다르게만 느껴졌다.
산노미야 역에서 모토마치역으로 한 정거장 더 가야했다. 우리가 묵어야 할 숙소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호텔은 하룻밤에 12000엔. 한 사람당 4000엔이였다.
처음엔 일일히 돈 쓴 내역을 써나가려 하였다.
근데 한 3일만에 관두게 되더라.
친구 한 놈은 그걸 어찌 그리 꾸준하게 열심히 쓰던지.





저가항공사의 기내식은 삼각김밥 뿐이라 배가고팠다.
일본에서 처음 체험한 음식은 규동이였다.
'요시노야' 음식점은 일본 내에 규동 전문점으로 전국체인인데.
우리나라의 김밥천국 쯤 되려나..
짭조름한 고기를 밥위에 얹어 먹는 덮밥.
(근데 미국산 쇠고기다.)



밥을 먹자마자 모토마치역의 시장거리라 할 수 있는 난킨마치로 향하였다.
난킨마치 위로는 길 위로 지붕이 덮여 있었는데 그 길 한가운데 잠깐 빨간색 도리이가 있었다.
이걸 도리이라고 해야 맞는건지.. 모르겠다.
쇼핑은 오사카에서. 거리를 본 것으로 만족하고 다시 모토마치역으로 향하였다.





모토마치역은 다소 차분하고 조용했다.


전철을 기달리는 것 조차 첫날엔 설레였다.


전철을 타고 산노미야역으로 다시 이동하여 도착한 곳은 이쿠타신사.


처음으로 만난 일본의 신사는 도심 한가운데 있었다.


날씨가 꾸물거려서 그런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아니 그보다 일주일 동안 여행 중에 한국인이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던 곳이 바로 고베였다.







신사 구경을 마치고 바다에 맡다은 항구로 향하였다. 사진들은 항구로 향하는 육교에서 찍은 고베의 시내.

사진 찍을 때도 궁금했던 저 의문의 작은 신사(!?)
처음에 뭔가를 파는 포장마차 따윈줄 알았으나 가까이 다가가니 동전 넣고 참배하는 작은 신사였다.



고베 지진 메모리얼 파크 - 라길래 박물관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말그대로 "파크"였다.
그 날을 잊지말고 반면교사로 삼겠다는 거대한 탑 하나와 바다와 연결된 부두에 지진으로 부셔진 잔해뿐이였다.



고베의 상징이라던 고베 포트타워 마저도 문을 닫았다. 우리는 운도 지지리도 없지.



아쉬운 마음에 항구 배경에 사진을 남겼다.




숙소로 돌아가는 일본의 첫날 밤은 아직 '일본'이라는 단어의 설레임, 간판들 마다 적혀있던 어색한 글자들 탓에 마냥 웃으며 돌아왔다.
지진파크와 포트타워 때문에 실망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설레였던 첫날이였으니까..



저작자 표시
Creative Commons License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CimanyD 트랙백 0 : 댓글 0